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사랑하는 아빠, 엄마께, 지난 8월 21일 처음 임신 테스트를 하고 엄마, 아빠께 전화를 해서 임신을 한 것 같다고 말씀 드렸을 때, 엄마가 "참 감사하다." 그러시길래, 우리 엄마는 신앙하시는 사람이라 그런 말씀을 잘 하신다고 생각했어요. 참아버님 병석에 계신다고 하는 때라, 금식을 하고 있었는데,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나는 걱정하고 있는데,엄마가 더 잘 되었다고 하셨었잖아요. 보통 엄마는 아니시지요. ^^ 초음파 사진을 엄마한테 보내고 나니, 엄마는 또 "참 감사하다" 하셨어요. 시어머니한테도 초음파 사진을 보내면서 "저도 아가도 다 건강하대요." 했더니 어머님도 엄마처럼 "참 감사하구나." 하셨어요. 두 어머니들의 입에서는 "다행이구나"라는 말보다 "감사하다"는 말이 나왔을까.. 그날 그렇게 ..
엄마, 아빠! 생각나세요? "민주야~~!!! 잘 지내냐~~!!!" 나 처음 캐나다 가서 전화하는데, 엄마가 하도 소리를 질러서 내가 멀리 있어도 전화는 잘 되니까소리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웃엇던 거. ㅎㅎㅎㅎ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요.엄마가 너가 멀리 있으니 왠지 소리쳐야 들릴 것 같다고 농담처럼 이야기 하셨었어요.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먼곳 까지 왔는데, 전화기로 들리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마치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니, 더 그리웠던 기억이 나요.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먹을거며 생필품들 보내주는데, 엄마한테 생리대 보내달라고 했다가 혼이 났었어요. "그 사람들은 설마 생리대 없이 살겠냐, 다 사람 사는 곳이 똑같지 않겠느냐" 면서 그냥 거기 사람들 맞춰 살아보라고 했던 엄마가 원망스럽..
중학교 3학년 때였나봐요. 1996년 1월인가, 2월인가..연합고사가 끝나고 오는 겨울방학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요. 교회에서 HARP 일본 역사 탐방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고 싶던지.나의 역마살은 아마 그때부터 시작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가격이 한 35만원 했던걸로 기억나는데, 엄마한테 보내달라고 졸랐었어요. 엄마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엄마는 어떻게 친구도 없이 혼자서 가느냐고 말렸는데, 내가 교회 친구들도 '갈지도 모른다'고 엄마를 설득하고, 내 용돈을 보태서 가겠다고 생 고집을 부렸었어요. 결국 허락하신 엄마랑 탐방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으러 서울로 갔을 때,거기서 만난 나처럼 혼자 온 한살 어린 친구하고 같이 친하게 지내면서다녀오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 돌아보면, 엄마는 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