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후쿠오카_1995] 엄마, 나 일본에 보내주세요. 본문

역마살 인생에서 배우다.

[후쿠오카_1995] 엄마, 나 일본에 보내주세요.

막내 딸 2012. 11. 19. 05:28

중학교 3학년 때였나봐요. 1996년 1월인가, 2월인가..

연합고사가 끝나고 오는 겨울방학이었던 걸로 기억이 나요. 

교회에서 HARP 일본 역사 탐방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고 싶던지.

나의 역마살은 아마 그때부터 시작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가격이 한 35만원 했던걸로 기억나는데, 엄마한테 보내달라고 졸랐었어요. 

엄마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엄마는 어떻게 친구도 없이 혼자서 가느냐고 말렸는데, 

내가 교회 친구들도 '갈지도 모른다'고 엄마를 설득하고, 

내 용돈을 보태서 가겠다고 생 고집을 부렸었어요. 

결국 허락하신 엄마랑 탐방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으러 서울로 갔을 때,

거기서 만난 나처럼 혼자 온 한살 어린 친구하고 같이 친하게 지내면서

다녀오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 돌아보면, 엄마는 엄청 걱정을 하고 계셨을 텐데,  

나는 온통 일본에 간다는, 비행기를 탄다는 설레임만 기억이 나요. 


엄마도 제주도 갈때 한번 타본 비행기에 

막내딸을 태워 바다건너 일본까지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을까요. 

내가 지금 사랑이를 생각하면, 나는 그런 용기가 있을까, 싶어요. 

신랑마저도 혼자 외국을 보내는 것이 걱정이 되고 두렵기까지 한데 말이죠. 


엄마는 항상 나한테 이런 이야기 해주셨었잖아요. 

"내가 너를 가르치면 나 만큼 밖에 못 자라니, 

세상에 많은 스승들한테 배우고 익혀서 엄마보다 훨씬 더 성장한 사람이 되라." 고. 


오늘 아침 훈독을 하는데, 아버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가정에 있어서나 국가에 있어서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보다 훌륭하고, 자기보다 모든것을 더 갖추고 있는 후계자가 나오기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변천을 추월하여 영원에 가까운 요구조건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전통을 계승한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자녀들이 상속자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그러한 전통의 상속자가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통을 보다 높은 가치로 향상 시킬수 있는 방법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각 세대마다 기존 전통의 중요함을 인식해야 하고, 그 전통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한 전통은 항상 자기의 자녀들이 자신들 보다 더 낫기를 열망하는 부모들이 있는 참된 가정에서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열망을 가진 부모들은 끊임없이 자녀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격려해 줄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들보다 더 훌륭하게 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며, 자녀들에게 가능한 한 최선의 여건을 마련해 주고자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들은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것을 희생할 것이며, 심지어는 자녀들을 부모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 주는 방향으로 기꺼이 강요하기도 할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자기보다 나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로 태어났다가 자기보다 못한 아들딸을 낳게 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면목이 없어집니다. 어머니 아버니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상 자기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자녀도 이러한 생각을 할 때 자동적으로 사랑의 세계는 나타나고 천국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축복가정과 이상천국-1007) (천성경, 488)"


이 말씀을 두고 보니, 엄마는 나에게 천국을 열어주고, 

사랑의 세계를 만들어 주고 계신 분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도 엄마가 실천하고 계셨던 것을 느끼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든 그렇지 않든, 엄마의 딸은 그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려고 해요. 

우리 사랑이가 그런 할머니와 엄마의 마음을 고스란이 받아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래봐요. 


결국 일본을 다녀오면서 시작한 나의 역마살 인생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지구를 내 가족처럼 생각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엄마의 기대를 조금은 충족하고 있지 않은가요? ^^ 


사랑하는 엄마. 

지금도 되돌아 생각해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처음으로 접해본 그 때 그 겨울의 일본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건, 

엄마의 걱정어린 눈빛과 한없이 믿어주던 그 지지와 용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필름사진으로 찍었던 때라 사진이 논산 집에 있어서 애띤 중학생 나의 사진들은 

나중에 한국에 가게되면 그때 스캔을 해서 올리는 걸로 기약해요. 


사랑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