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오세아니아_2005] 잊을 수 없는 그 노래, 그 춤들. 본문
사랑하는 아빠 엄마께,
오늘은 신랑과 함께 플라멩코 공연을 보고 왔어요.
매년 요맘때 쯤이면 유명한 플라멩코 연출자 (파코 뻬냐, Paco Pena)가 영국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하는데,
2009년 스페인에서의 추억때문인지, 처음 찾았던 2010년 카르멘이라는 주제의 플라멩코 공연을 보고 반해버렸어요.
그 후로는 매년 이렇게 공연을 가고 있는데,
올해는 아프리카 춤과의 적절한 조화로 연출해낸 춤 공연이었는데,
정말 멋지더라구요.
[2013 런던, Sadlers Well 이라는 공연장, 플라멩코를 보고]
근데 사실 오늘은 플라멩코 공연보다 아프리카 춤과 음악을 들으면서
섬나라 있던 시절이 생각나서 그 이야기를 드리려고 집에 들어오자 마자 컴퓨터를 켰어요.
노래와 춤을 곧잘하던 섬나라 사람들.
물론 아프리카와는 그 음색이 많이 다르고 느낌도 흥겨움도 많이 달랐지만,
왠지 피부가 어두운 친구들이 하는 음악이란 느낌은 자연스럽게 그 때 그 시절을 그 친구들을 생각나게 했어요.
솔로몬 아일랜드, 통가, 피지를 다니면서 섬나라 친구들은 참으로 노래와 춤을 사랑한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솔로몬에 갔을 때, 우리 센터에 같이 살던 친구들은 항상 기타를 들고 노래를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면 누군가가 항상 노래를 하고 있었어요.
기타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공동 소유로 그 자리에 항상 있었고,
누가 노래를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은 화음을 넣고 의자를 북삼아 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흥겨운 멜로디가 나오고,
누군가는 춤을 추고 그랬어요.
섬나라 친구들은 수줍음이 많은데, 이상하게 춤추는 것은 그렇게 수줍어 하지 않아요.
본능인가 싶었어요.
그때 같이 지냈던, 코린, 크리스, 스티븐 등등 친구들이 생각나네요.
차를 타도, 길을 걸어도, 바닷가에 놀러나와서도 노래가 끊이지 않아서 인지,
친구들 얼굴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맑음 같은게 있어요.
언제든지 스트레스가 없는 듯 말예요.
우리나라의 슬픈 (한서린) 노래들이 우리네 역사와 마음을 반영한다면,
이 친구들의 이 아날로그 적인 순순한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얼마나 즐겁고 가볍게 사는지 알 수 있겠더라구요.
물론, 대부분의 노래가 기독교의 찬양곡이기는 했지만요. ^^ (참고로 솔로몬은 95%가 기독교인들이래요.)
"파이야~~아, 홀리 스피릿 풋힘 파이야~~" 하던 노래가 아직도 머리속에 남아 있어요.
엄마 아빠 만나면 나중에 한번 불러드릴께요 .ㅋㅋㅋ 내가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솔로몬에서 3대 대형 교회 목사님의 집에 초대 받아서. 목사님 부부의 노래 경청]
찬양곡을 떠올리면,
통가를 잊을 수가 없어요.
대부분의 학교들이 미션스쿨(기독교학교)이라서 아이들이 무슨 강의나 큰 행사가 시작하기 전에는
준비찬송처럼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데요, 그게 왠만한 합창단 빰을 쳐요.
그 아이들이 세계 합창단 대회에 나올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할텐데,
아마 그 아이들은 살면서 몇번이나 자기 나라를 나와볼 수 있을까.. 의심이 될 만큼
경제사정이나 여행에 대한 여가 의식이 그렇게 성장되지는 않았거든요.
여튼, 어느날 제가 우리 팀과 함께 에이즈 예방 강연을 다니고 있을 때였어요.
어느 남자 고등학교에 강의를 하러 갔는데,
한 30여명 되는 반에 들어갔어요.
선생님도 남자분이고, 저 같은 작은 동양여자애가 강사라고 오는게 신기한 듯,
제가 교실에 들어서니까 다들 그 큰 눈들을 더 크게 뜨고 저를 바라보더라구요.
반장인지 하는 아이가 일어나서 준비찬송을 시키는 것 같았어요.
무언가를 어떻게 하니까, 덩치가 산만한 아이들(통가는 피지, 사모아와 함께 폴라네시아에 속한 지역으로 사람들의 평균키가 180이 넘고, 덩치가 다들 럭비 선수같아요. 여자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이 지역 출신 럭비선수들이 많이 있지요. )이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반장이 "아~~!!!" 하고 소리를 치니까
반 아이들이 일시에 "아~~" 하는 3~5중창의 화음을 한꺼번에 내면서 찬송가를 부르더라구요.
마치 이 반 아이들이 모두 합창단에서 연습이라도 한듯이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에 감동을 받아 눈물까지 날뻔 했어요.
남자들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합창이,
그것도 그냥 어느 고등학교 한 반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멋있었거든요.
지휘도 없고 반주도 없던 노래를 넋을 놓고 들었던 생각이 나요.
나는 어쩌다 통가라는 나라까지 와서 이런 감동을 받을 수 있게 된 걸까.
축복이다 생각하면서 그 감동이 지금까지 이어져와요.
언젠가 통가로 다시 돌아간다해도, 그런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요. ....
[솔로몬 아일랜드 한 학교 야외강당에 모인 학생들]
피지에서는 정말 멋진 불춤을 본적이 있어요.
야시장에서 우리 행사 였던 평화 컨퍼런스 티켓을 팔고 있었어요.
시장에는 사람들이 언제나 많고, 그 때는 유독 축제기간이었는지, 놀이기구도 들어오고, 흙으로 된 공터에
먹거리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어요.
밤이 어둑어둑 해지니까 음악소리도 커지고 사람들도 더 많아지는데,
한 쪽에서 사람들이 공연을 준비하더라구요.
나도 친구들하고 한쪽으로 가서 공연을 보려고 섰는데,
예쁘고 젊은 여자 2-3명, 남자 2-3명이 나와서 전통 원주민 옷을 입고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우리 예전에 티비에서 많이 보던 하와이 알로하~~ 하는 그런 춤들 있잖아요. ㅎㅎㅎ
여자들은 가슴을 코코넛 껍데기를 잘 깍아서 만든 걸로 가리고,
바나나 잎인지 코코넛 입인지로 짜낸 치마를 입고,
온몸에는 기름을 바르고 춤을 추는데,
옆에 꼿힌 횃불에 빛나는 것이 그렇게 아름다고 섹시할 수가 없더라구요.
한참있다가 남자들이 나와서 거친 춤들은 추는데,
마치 동물들의 모습들을 보는 것 같았어요.
춤의 하이라이트는 불춤이었는데,
기름통을 가져오더니, 한 손에 불 봉을 들고 한 남자가 입에 문 불을 뿜어 내니 불이 "확~~악"하고 번지는데,
그 광경이 동물원이나 호텔에서 하는 공연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야생적이고 멋졌어요.
물론 더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요 ㅠㅠ
화려한 음악에, 여자들의 살랑거리는 춤 가운데 들어서 남자들의 불춤..
섬나라의 야생적인 환경에서 돈 한푼 안내고 보았던 것들이
머리속에 가슴속에 남아서 가끔씩 내게 예술을 향한 마음을 불러 일으켜 줘요.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마음이랄까요.
지금은 이렇게 돈을 내고 공연을 봐야 하지만,
그런 멋진, 때묻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모습들을 또 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20대 열정가득하고, 세상을 잘 모르던 시절이라
어렵고 힘든곳도 마다않고 신나게 다니고,
보는 것, 듣는 것, 경험하는 거 모두가 신기하고 즐거울 때 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6-7년이나 지났는데요, 마치 어제 일처럼 색깔들 까지 분위기들마저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오늘 공연을 보면서 난 그 공연장이 아니라
오히려 태평양 섬나라를 다시 여행하고 온 기분이예요.
엄마아빠와 항상 함께 좋은 것들을 보지 못해서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내가 이런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셔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요.
섬나라에서 그렇게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을 볼 때 마다 엄마아빠 향한 기도 많이 했었어요.
언젠가는 같이 볼 수 있게...
영국에 오시면 좋은 것들 많이 보러다녀요.
그 감동 같이 느끼고 싶어요.
오늘은 런던에 비가 많이 와요.
아빠 엄마, 오늘도 보고 싶어요.
사랑하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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