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프라하_2012.12] 중세도시 속에서. 본문
사랑하는 아빠, 엄마.
얼마전에 중세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다던 체코라는 나라의 프라하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유럽에 사니 이렇게 다른 나라와 문화를 접하고 공부하기가 이렇게 쉬운 일이 되었어요.
그러고 보면 유럽사람들은 지리적인 복을 받은 건데, 그걸 알고 감사하며 살고 있을까 모르겠네요.
역사를 좋아하는 아빠가 같이 왔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아빠는 다큐멘터리로만 보셨다는데, 세계를 떠돌면서 눈으로 직접보는 딸보다 더 많이 아시고,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작아지는 걸 느껴요.
살아온 세월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느껴요.
보고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그것을 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하게 되어요.
그런 대화도 언제 해봤는지 기억도 안나요.
작은 오빠랑 아빠랑 함께 있었더라면, 나보다 이 프라하라는 도시는 100배는 즐겼을 텐데.. 하는 생각에
내년에 아빠가 런던에 오시면, 박물관이라도 같이 보러 다닐 날을 머리속에 그려봐요.
2박 3일 일정으로 갔는데,
올드타운 이라고 불리는 시청광장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마켓하고,
지금은 대통령 궁으로 쓰인다는 프라하 성을 구경하고 왔어요.
부른 배를 안고 다니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더라구요. ^^
사랑이가 배속에서 엄마가 보고 배우고,
감동받고 깨닫는 것들을 고스란히 받아 나오길 바라면서,
열심히 걷고 읽고, 보고 사진찍고 그러니 시간이 또 훌쩍 가버리대요. ^^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는 곳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여기사는 서민들이 자기의 수공예품이나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서 만든 장터예요.
우리로 말하는 마치 5일장 같이요.
먹는 음식부터, 그릇이나 대장장이 칼 같은 것 까지, 중세 모습을 재현한듯한 장터가 서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3대 크리스마스 마켓중에 하나가 독일, 벨기에를 이어, 프라하에 있는 거라고 그러더라구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리도 봤어요.
잠시 공산정권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카톨릭(천주교)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 그런지,
크리스마스는 어디보다 더 큰 명절 같았어요.
전세계에서 크리스마스라면 이곳으로 놀러오는 저같은 한국사람도 있고 말예요.
중세 도시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도로와 건물들이
겉보기에는 정말 불편해 보였지만,
그 운치와 아름다움은 현대식 건물 못지 않았아요.
다음날 프라하 성에 가니
천 년동안 지어졌다는 성당이 있더라구요.
여러 건축양식이 짬뽕이 될 만큼 오랜 시간 지어졌다니,
어마어마하지만 섬세한 그 건물을 보면 경탄이 저절로 나오더라구요.
항상 멋지고 좋은 것을 보면 엄마아빠 생각이 많이 나는데,
같이 있지 못해서 죄송하고 아쉬워요.
세인트 비투스라는 성당에는 그 섬세한 조각상 하나하나들이
감탄사를 절로 나게 하더라구요.
기독교가 번성했던 유럽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나긴 시간동안 예수님을 찬양하니,
더욱더 아름답고 멋지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외로운 예술품들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겠지요.
로마도, 프라하도, 런던도 파리도 기독교가 무성했던 곳에서의 성당 방문은
언제나 인간의 신앙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프라하도 어마어마한 규모와 바닥부터 천정까지 그 섬세한 조각들로 경탄을 자아냈지만,
이 또한 작은 시골 마을 엄마아빠의 신앙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조화롭게 유지하며,
현실과 이상을 조화롭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조각상들보다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도 프라하 성은 대통령 궁으로 이용중이라고 했어요.
곁길에는 성의 군대가 살았다는 길목이 있는데, 프라하가 낳은 최고의 작가라고 불리는 카프카가 한때 살았던 집도 보존이 되어 있더라구요.
들어가서 책한권, 엽서 몇장 사들고 나왔어요.
작은 수공예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구경하고 나와서는,
체코의 전통음식이라는 굴라슈, 소세지, 돼지 무릎 같은 것들을 사먹고
야경도 구경하고,
낭만의 카를교라는 곳도 건너봤어요.
드라마에서나 보던 곳을 걷고 있자니,
이게 현실인지, 꿈속인지 잘 몰랐지만, 기분이 좋았던 것많은 확실해요.
우리사랑이도 내 뱃속에서 나랑 같이 행복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10개월 품고 있다가 나오는 자식인데,
나는 엄마처럼 아빠처럼 내 자식에게 소유욕보다는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
그렇게 품을 떠나 보낼 수 있을까요?....
아직은 용기가 안나지만, 하나씩 하나씩 배우는 엄마가 되어야 겠죠.
연말이예요.
엄마아빠 날씨 추운데 건강조심하시고, 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 ^^
오늘도 사랑해요.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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