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시드니_2006] 유학생의 행운. 본문
사랑하는 엄마아빠,
이제 사랑이가 나오면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되니,
2006년,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처음 제대로된 공부를 시작했던 그 때가 생각나 편지써봐요.
[시드니 대학교 본관 건물.. 정말 웅장하고 예쁘지요.
학교 다닐때는 눈에 보이지도 않더니, 지금 보니 참 멋진 학교를 다녔어요. 저. ^^ ]
시드니대학교 석사 합격소식을 듣고도 뭐 별로 기대도, 두려움도 없이
묵묵한 감정으로 학교에 갔다가
첫 수업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것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충분히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학교라는 곳은 다른 곳이었다는 것은 그때는 미처 몰랐나봐요.
호주 생활 3년차에 이렇게 언어적 장벽을 느끼게 될 줄이야...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훔친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어요.
나와의 싸움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싶고.
얼마나 그 시간이 괴롭고, 자신감은 있는대로 상실했었어요.
세상에 이렇게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이 많구나 새삼 깨닫고,
내가 정말 작아지는 순간들이었지요.
[집에서 에세이를 쓰다가..]
그렇지만 그만큼 배움도 컸다는 것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깨달아 지더라구요.
내가 그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거기서 성과를 하나씩 볼 수 있었을 때, 내가 이만큼 성장했구나.. .그전에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기쁨을 느끼기도 했구요.
내게 항상 의지가 되고, 나를 항상 에너지로 가득하게 해주었던 건 단연 엄마아빠의 칭찬이었지요.
"그래도 민주 네가 대견하다, 잘한다." 하는 말씀들이 그 시간을 극복 할 수 있게 해주었던 힘이었지요.
졸업하던 날, 내가 학교를 다니게 해주셨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순간 머리속을 스쳐갔어요.
재정적으로 도와주셨던 은인과,
어려운 유학생활에 보탬이 되어 주었던 교회 식구들 모두,
그리고 함께 생활했던 나의 하우스 메이트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예요.
[석사 졸업하던날]
그때도 지금도 맘속에 바라는 것은 다 이루며, 이루어지며 살아가고 있는 듯해요.
선교사로 출발한 호주의 생활이 유학생으로 마무리 지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그것도 내게는 지금까지도 내가 인생을 풍요롭게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거든요.
[친구들과 학교에서]
사랑하는 엄마 아빠,
이렇게 의지 있고 단단한 딸로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행운이 가득한 인생을 주셔서도 감사하구요.
앞으로 우리 사랑이도 다른 복 보다도, 사람복, 경험복, 사랑복 많은 사람으로 자라나면 좋겠어요.
오늘도 호주에 있을때 만큼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요,
런던에서 딸.
[학교 앞 공원. 집에서 학교 가는 길]
'역마살 인생에서 배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산_2007.05]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는 '성장'이 있다. (0) | 2013.02.27 |
---|---|
[시드니_2006] 인복은 가장 좋은 복. (0) | 2013.02.24 |
[솔로몬군도_2005] 솔로몬 아일랜드의 추억 : 사람이 있는 곳에. (0) | 2013.02.22 |
[프라하_2012.12] 중세도시 속에서. (0) | 2012.12.26 |
[런던_2010] 자립이라는 것. (0) | 2012.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