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백두산_2007.05]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는 '성장'이 있다. 본문
사랑하는 엄마 아빠,
아빠가 많이 걱정하시는 만큼 저도 저의 학업이 빨리 진행되기를 바라고,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늦은 나이까지 공부하고 있는 모습에 그래도 답답해 하지 않으시고,
제가 제 꿈을 향한 도전을 해 나가는 모습에 항상 용기주시고 북돋아 주셔서 감사해요.
요즘 논문주제로 리서치를 하고 있는데,
북한 관련 자료들을 많이 보게 되어요.
그러다 문득 백두산에 갔을 때 사진을 들추어 보았어요.
사진을 둘러보니, 북한이 찍힌 사진도 몇 장 있어, 여기에 기록 남겨 보아요.
2007년에 협회에서 근무할 때 대학생들이랑 같이 백두산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단체로 갔었어요.
그 때 같이 갔었던 연우언니가 임신 6-7개월 차 였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별루 생각도 못했는데,
지금 내가 이 입장이 되어보니, 언니도 참 대단했던 것 같애요.
그 몸으로 백두산에 오르다니!!!
우리는 배를 타고 중국의 단동이라는 지방을 거쳐 백두산으로 향하는 코스로 갔었어요.
비용이 엄청나게 싼 데다가 다들 젊은이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보다는 우여곡절을 즐겼다고나 할까. ㅎㅎㅎ
주머니 사정도 있고해서.. ㅎㅎㅎ
일인상 23만원인가 했던 걸로 기억나요. 정확한지는 모르겠어요.
배를 타고 한나절 갔던 것 같애요.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배에서 잔것 같지는 않구요.
갑판에 올라서서 기러기 구경하고 노을 지는거 구경하고 했던 게 기억나요.
우리 나라 황해가 이렇게 아릅답네요.
단동이라는 도시는 논산시쯤 될까요. 그보다는 조금 컸던 것 같기도 하구요.
발달이 덜 되어서 그런지, 그리 크리 않고 작은 중국의 시골 도시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도 시내도 크고, 사람도 어찌나 많은지.
연우언니랑 예원이라는 동생이예요. 둘다 아이엄마가 된지 오랜 경력자들이예요.
한 시장 입구에서 찍었는데, 이 시장에서 물에 넣으면 꽃이 되어서 피어나는 차도 하고, 사람들이랑
말이 안통해서 손짓 발짓 하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시내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이렇게 길거리에서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도 볼 수 있었어요.
여름이라 그런지 북쪽 지방인데도, 날씨가 좋아 사람들이 다 길에 나와 있더라구요.
우리네 문화와 비슷한 것들이 마치 한국의 시골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차로 거의 1박 2일을 달려서 백두산에 가요.
버스를 타고 달리는데 운전기사 아저씨가 어찌나 운전을 험하게 하시는지,
그 긴 시간동안 잠을 한숨도 못잤어요. 차도 울렁거리고, 사람도 없는 시골길에서 얼마나 경적을 울려대는지..
북한에서 공부한 중국사람이 가이드를 했는데,
그 사람 말로는, 중국사람들이 하도 무단횡단을 잘 해서,
차가 달리면서 경적을 자주 울려줘야, 사람들이 덜 사고를 당한다고... 그 시골길에서는 좀 천천히 달리지..
어쨌든 그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차창으로 보이는 평원]
그렇게 달리다가,
화장실 시간이 되면 우리는 다 밖으로 나가서
알아서 볼일을 봐요.
가끔은 여자들은 화장실을 쓸 수 있는 곳에 내려주곤 했는데,
한번은 낭떠러지 앞에 있는 벽에서 볼일을 보라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무섭든지. 그걸 사진 찍어 두었어야 했는데. ㅠㅠ 아쉬워요.
간간이 보이는 자연 경치들은 역시 대륙인가..
역시 개발이 덜 되어서 이렇게 아름다움이 남아있는가...
하는 생각을 할 만큼 너무 아름다웠어요.
특히 탁 트인 벌판과 하늘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이예요.
중간에 어느 도시에 도착해서는 그 곳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어요.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출발하는 일정이었는데,
그 곳에서 우리는 북한을 볼 수 있었어요 .
그게 아마 두만강이지 않나 싶어요. 기억이 잘 안나는데...
정말 가까이에 있었거든요 .
이 강만 건너면 저기가 정말 북한인가? 싶은 정도로 사람들도 보이고 다리도 있구요.
그래서 이 강을 건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탈북을 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손을 뻗으면 정말 닿을 것만 같았거든요.
반신 반의하는데, 저기 멀리 북한 국기가 보였어요.
고기잡이 배였는지, 군함이었는지...
그 앞에는 철부지 아이들이 물놀이 하는 모습, 우리쪽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도 보였구요.
거기서 우리는 유람선 같은 배를 타고 그곳을 한바퀴 돌아보기도 했어요.
거의 북한에 닿을 뻔 했어요.
그쪽으로 사진을 되도록 찍지 말라고 했는데,
저는 연신 사진기를 눌러 댔지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기회가 있겠나 싶어서요.
웃고 있지만 바싹 마른 아이들 모습이 내내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참.. 국가가 뭔지, 정치가 뭔지.. 사람사는 건 다 똑같은데,
누구는 필요없는 치장을 하며 살고, 누구는 필요한 것 마처 굶주리며 살까..
통일이 되면, 나아질까. . .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 생각 지금도 사실 많이 이어져 공부하고 있지만요.
저녁에는 숙소에 와서 저녁을 먹었어요.
낮게 그 북한 사람들을 보고서 이렇게 푸짐한 음식을 보니,
한켠에 어찌나 미안한 마음이 들던지... 그래도 맛있게 먹었어요.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 되자면서. ^^
다음날에는 백두산으로 향했어요.
노래가사에나 나오고,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백두산.
사진으로만 보고, 말로만 들었는데,
이렇게 눈앞에 다가와 보니, 아름답다는 표현보다는 경이롭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산이었어요.
너무 높은 나머지, 다양한 루트중에, 우리는 차를 타고 산의 거의 꼭대기 까지 올라가서
약 30분정도만 걸으면 되는 코스로 갔어요.
임신한 연우언니와 함께 천천히 걸으며 올라가는데,
역시나 고산지대라 그런지 쉽게 숨이 차 오르더라구요.
[오르는 길에 산중턱에서]
화산이라 그런지 나무는 없고 잔디 같은 것들로 덮여있는 모습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어요.
다른 곳으로 오면 절벽도 있고, 나무도 있고 하다는데,
우리가 선택한 길은 이렇게 멀리까지 보이는 풍경이 좋은 곳이었어요.
[파노라마 사진기로 찍은 천지 모습]
천지에 오르니 앞이 탁 트인 것이
이렇게 경이로울 수가 없었어요. 눈앞에 펼쳐진 것이 그림이 아니라 실제인가..
구름이 강한 바람에 밀려 왔다 갔다 하면,
천지에 비치는 그림자가 변화 무쌍하게 변하고,
그것이 마치 천지안에 살고 있는 용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이 천지에는 여의주를 머금은 용이 승천하기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그렇게 보였거든요. ^^
그 앞에 앉아서 기도도 하고, 한참을 내려다 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보기도 하구요.
산에서 도인들이 도를 닦는 이유를 알 것 같더라구요.
이런 경치를 보면서 자기를 되돌아 보는 것은
마치 하나님이라는 신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돌아보는 효과를 주기도 했어요.
작구나.. 내가 한참 작구나.. 하는 경외감마저 갖게하는 자연앞에서 작아지는 그런 느낌요.
백두산 저쪽은 북한 땅이래요.
그쪽으로 가서는 사진을 찍지말라는 표지판도 있었어요.
우리가 언제쯤 그쪽으로 올라오는 산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더라구요.
안된다고 하면 더하고 싶어지는 그런 충동을 느껴서 인지,
우리 땅을 두고 바다 건너 1박2일 버스를 타고 돌아돌아 이곳에 와서 인지,
왠지 이 상황이 원망스럽고, 아쉽고 하더라구요.
보기에는 다 같아 보이는 땅인데,
갈 수 있는 곳이 있고, 갈 수 없는 곳이 있고... 딱! 한걸음 차이인데 말이죠.
백두산은 수년전에 가본 록키산맥보다도 더 나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던 것 같애요.
그 웅장함도, 공기의 상쾌함도,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더라구요.
더 많은 정기를 받아 오고 싶었지만,
나는 도인이 아니기에, 그걸로 만족하고 발걸음을 돌려 내려왔지요.
내려오는 길에 다시 보니,
내가 등지고 올라온 길이 이렇게 멋진줄 몰랐던거 있죠.
어느 산등성이는 경사가 완만해서,
친구들이랑 뛰어 내려와보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을 구르기도 하고 하면서 내려왔어요.
신나게 뛰다보니 벌써 버스앞.
올라갈때는 그렇게 힘들더니, 내려오는 건 순식간이더라구요.
다시 우리가 타고온 배로 돌아가는 길은 다시 1박2일.
오는 길에는 어떤 선물 가게를 들렀는데,
한국말을 잘 하는 친구들이 판매원을 하고 있더라구요 .
조선족이라고 소개했는데, 가이드 말로는 북한 사람들이 와서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한 친구에게 사진한장 찍자고 하니,
흔쾌히 모델이 되어 주었어요.
그때 가지고 있던 전화기로 찍은 사진이라 화질이 흐릿하지만,
이 사진 한장만 보고 있으면, 우리 정말 친구같지 않아요?
다시 배로 돌아와 한국으로 오기까지는 많은 생각에 젖어
이것저것 글로 적었었는데, 그 일기장도 논산집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추억을 되새겨 보니, 그 때 그때 기억이 생생할때, 다 엄마아빠랑 이야기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다정다감한 딸이 아니라서,
저한테 서운한 것도 많으시겠지만,
이런 성격때문에 더 인생을 크게 보고 과감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
작은 것들 많이 못보는 대신, 큰 거 보고 살아가느라 그렇다고..
우리 사랑이가 할머니 할아버지 한테는 귀염둥이 손자가 되면 좋겠어요 .
엄마가 다 못한 효도, 손주가 더 해드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
그래도 항상 어디가나 무얼 먹어나 난 아빠 엄마 딸이라,
엄마 아빠 생각은 잊지 않고 해요.
오늘도 사랑해요.
런던에서, 딸.
'역마살 인생에서 배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쿄_2011.09] 환락가에 얻은 숙소 (0) | 2013.06.28 |
---|---|
[도쿄_2011.09] 가방과 함께 사라지다. (0) | 2013.06.28 |
[시드니_2006] 인복은 가장 좋은 복. (0) | 2013.02.24 |
[시드니_2006] 유학생의 행운. (0) | 2013.02.23 |
[솔로몬군도_2005] 솔로몬 아일랜드의 추억 : 사람이 있는 곳에. (0) | 2013.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