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솔로몬군도_2005] 솔로몬 아일랜드의 추억 : 사람이 있는 곳에. 본문
사랑하는 엄마아빠께,
벌써 8년이나 전이예요.
생각해보면 엊그제만 같은데, 시간이 어떻게 그렇게 쏜살같이 흐를까요.
요근래 아이가 태어나면 이래저래 할 수 있는 일들이 제약되어 있으니까,
밀렸던 영수증 정리며, 은행공과금 정리며, 여러가지 잡다한 일들을 하고 있었어요.
작년에 컴퓨터의 뭐가 잘 못되서 다 날라가 버린 내 사진도 얼마전에 복구했어요.
그 이후 정리를 안해서 사진들이 엉망징창이었는데, 그것도 요즘 정리하고 있어요 .
그러다 섬나라 선교 갔을때 사진들을 얼추 정리하면서 그 때 생각도 나고,
엄마아빠한테 제대로 이야기하고 보여드린 적도 없는 것 같고.. 하는 생각도 나고 해서,
오늘부터 또 차근히 섬나라 추억들을 떠올리며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여행은 어디를 갔다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누구를 만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누군가 그랬나요....
많은 곳을 다니면서도, 건물을 보고 박물관을 다니면서,
보이지 않는 과거의 사람들과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었지만,
사람들을 만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것은 더더욱 잊을 수 없는 인생의 경험이 되곤 해요.
그래서 섬나라에서의 6개월 짧은 시간은 8년이 지나오는 지금의 시간에도
생생하게 남아 나에게 행복한 감정의 물방울을 하나씩 떨어뜨려주고 있나봐요.
처음 솔로몬에 함께 갔던 친구들이예요.
한참 어린 친구들이 많았지만, 많이들 성숙하고, 나름 내가 리더라고 잘 따라주고 도와준 고마운 친구들이지요.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모인 팀이었는데도 우리는 참 잘 뭉쳤었어요.
지금도 소식전하고 그때를 추억하곤 해요.
제일 왼쪽에 계신분은 우리 인솔해주신 목사님이시구요. 성함은 존 아담미디스.
(사람들이 그 분 성을 가지고, 아담 과 이브라고 놀리기도 했어요 .^^)
호주, 브리즈번이라는 도시에서 대학교수셨는데, 심정이 좋은 분이세요.
섬나라 선교하면서 우리 강의하는거, 교육프로그램 같이 짜주시고, 심정적으로 힘들로 어려울때 아버지같이 많이 도와주신 분이세요.
처음 도착한날 솔로몬 시내(말하자면 시장)에 놀러가서 처음으로 코코넛을 사 먹었어요. 얼마나 맛있던지...
왼쪽부터, 우리 목사님(호주), 홉(뉴질랜드), 히토미(일본), 콘라드(독일), 소옥이(한국), (그 뒤에 남자분은) 마사히로상(일본), 은정이(한국), 미경이(뉴질랜드),
앞에 앉은 언니는 니까상(일본), 아벨(솔로몬).
지금은 앞에 앉아있는 니까상과 아벨은 결혼축복받아서 쌍둥이를 포함해서 아들 셋 낳고 지금도 솔로몬에 살아요. 가끔 행복한 사진들을 보면 이때는 그렇게 결혼까지 할줄은 몰랐는데, 생각할 수록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엄마의 백옥같이 하얀 피부와 아빠의 칠흙같이 까만 피부를 모두 이쁘게 닮아 잘 생겼어요.
축복의 힘이 대단하지요. ^^
우리 첫날 도착해서 숙소에 도착했는데,
이런 동네였어요. 사진속에 야자수 나무들이 우거진.. 마치 정글같지만, 여기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곳이였어요.
엄마, 소옥이 기억나세요? 호주에서 만나 좋은 친구된...
사진속에 내 오른쪽에 서있는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혼자만 모자를 안 쓴 친구요.
호주에서 외롭고, 힘들고, 어렵고 친구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외치던 때에,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한테는 선물같이 다가온 소중한 사람이예요. 지금은 연락자주 못하고 지내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감사한 친구지요.
솔로몬에 있는 우리 센터에서 함께 살던 친구들이예요.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뜨고, 바다건너 세상과 문화에 호기심이 가득한 10대,20대 소녀들.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기쁘면서도 항상 마음이 짠..했어요.
꿈과 희망이 가득한데, 환경이라는 제약이 아이들의 꿈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걸 그곳에 살아보니 알겠더라구요.
크리스 . 장난이 많던 친구였어요. 다들 나이가 저보다 어린데, 많은 것처럼 생겼죠. ^^
한국의 시골 밭 같은데, 여기는 우리 센터 마당이예요
임마누엘. 유일하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였어요.
아빠가 아프리카 사람이고 엄마가 키리바쓰라는 태평양 섬나라 사람인데,
그래서 그런지 키가 작은 다른 솔로몬 친구들에 비해서 이 친구는 키가 컸어요.
솔로몬 아일랜드에 유일한 라디오 방송국 디제이로 일하고 있었어요. 뉴스도 하고, 노래도 틀어주고 하는...
나중에 이친구가 일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우리 활동하는 메세지도 방송하고 그랬었어요.
나중에 그 이야기도 해 드릴께요. 지금은 벨기에 사람을 만나 가정꾸리고 유럽에는 사는 모양이예요.
가끔 안부 물으며 살아요. 좋은 친구예요.
저때 들고 있던 저 일기장은 한국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존.. 이었던가.. 이 친구는 솔로몬에서 제일 좋은 호텔에서 일하던 친군데,
뉴질랜드에서도 함께 무술 수련도 하고 그랬었어요.
나이가 어린데, "누나,누나"하면서 우리를 잘 따랐던 동생이예요.
이 친구들은 내가 생각날까요?
2005년 거기를 떠나면서 다시 보지 못했던 친구들인데.
한번은, 내가 길에서 만나 우리 세미나에 초대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 친구가 준 전화번호니까 당연이 그 친구집 전화라고 생각했죠. 물론 핸드폰은 없었어요.
전화를 걸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받으시더라구요.
"ㅇㅇㅇ 있어요? 통화를 하고 싶은데요.." 그랬더니,
잠깐 기다리래요. 한 20분이 지났나.. 어디서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그친구가 전화를 받는 거예요.
전화를 기다리다 지쳐 끊어버리려고 했는데,
전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소리들이 신기했어요.
마치 내가 공중전화로 전화를 한 것 같았거든요.
그 친구한테 물어보니, 그 동네에 전화기가 그거 하나래요.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 전화기 하나로 통화를 한다는 거예요.
그때는 2005년이었는데 말이죠.
그 친구는 그 전화로 자기를 찾는 전화가 왔다는 것이 기뻤나봐요.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는 약속을 정하고 만났어요.
혹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는다고 연락할 길이 없는 거죠.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태평양 섬나라 6개월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예요.
제일 오른쪽에 미경이는 엄마도 기억나실 거예요. 우리집에도 오고 그랬는데.
서울에서는 1년정도 저랑 같이 살았었잖아요. ^^
지금은 한국신랑 만나서 행복한 가정꾸리고 살고 있어요. 지금도 둘도없는 친구지요.
이 사진속에 나는 노랑 티셔츠를 입어서 그런가 더 까매 보이네요 .ㅋㅋㅋㅋ
못생겼어도, 그 때가 나는 가끔 그리워요. ㅎㅎㅎ
우리 솔로몬을 떠나는날 마중나와준 솔로몬 센터 식구들이예요.
가운제 건장한 마사히로상은 여기 협회장님이셨는데,
나보다 한살밖에 안 많았는데, 협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어요.
성격도 좋고 정말 대단하신 분이세요. 아내가 나랑 대학친구예요.
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협회장이 되어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고 부럽드라구요.
그분 덕분에 우리의 솔로몬 생활 40일 정말 즐겁고 알찼었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배움을 얻었던 곳이었어요.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그 나라에 있는 것 같아요.
살도 많이 없고, 얼굴도 까맣게 될대로 되어서, 현지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였지만,
외모도 스펙도 사람들 눈치도 보지 않고, 연애도 직장도 고민하나 없이,
내가 하고 싶은일 하면서 행복한 사람들 만나고,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그곳을 참 떠나기 싫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이후에 더 재미난 삶들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었죠. ^^
그 때 만난 그 사람들도 지금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래요.
사랑이가 크면 언젠가, 이런 섬나라에서 자연과 함께, 우리와는 정말 다른 문화속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화되어 살아보는 경험도 꼭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아요.
날씨가 추운데, 사진 보며 더웠던 그 섬나라의 여름을 생각해 봐요. ^^
오늘도 보고 싶어요.
딸.
'역마살 인생에서 배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드니_2006] 인복은 가장 좋은 복. (0) | 2013.02.24 |
---|---|
[시드니_2006] 유학생의 행운. (0) | 2013.02.23 |
[프라하_2012.12] 중세도시 속에서. (0) | 2012.12.26 |
[런던_2010] 자립이라는 것. (0) | 2012.12.25 |
[에루살렘_2004] 그 곳에 가려거든 히잡을 써라. (1) | 2012.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