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믿음. 본문
사랑하는 엄마아빠.
오늘 낮에 통화를 하고 나니,
요 몇 주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전화도 못드린 것인 생각이 났어요.
아... 정말 여유롭게 산다고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봐요.
이번주 부터 사랑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어요.
아.. 이래도 되는 건지 머리속이 혼란스러운데,
신랑과 오래 시간 논의하고 고민하고 결정한 거라, 후회하지 않기로 하고
좋은 어린이 집을 찾아보고 드디어 보내게 된 것이거든요.
그래도 엄마의 마음이라는데,
아직도 어리고 아가인 아들을 생판 모르는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
영 맘에 걸리고 찜찜하더라구요.
더군다다 지난주 적응훈련에서는 잘만 지내던 아이가
내가 떠나올때 엉엉 서럽게 우는 모습에 저도 집에 와서 엉엉 울어버렸어요.
그렇지만 이내 잘 해 낼거라고 사랑이를 믿는 수밖에 없더라구요.
신랑도 오히려 사랑이는 거기를 더 좋아할 거라고,
엄마아빠가 없는 환경이 처음이라 불안해서 그런거지,
익숙해지고 엄마아빠가 저녁이 되면 데리러 온다는 사실을 알면, 이제 거기가 더 재미있는 곳이 될 거라고..
그러대요. 그말을 믿기로 해 놓고도,
저는 사랑이를 보내 놓고 초를 켜고 기도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더라구요. 첫날은.
엄마아빠는 제가 중학교때 일본에 가겠다고 했을때,
내가 대학때 캐나다고 가겠다고 했을때..
어떤 마음 이었을까.
사랑이는 어려서 그렇고, 대학때는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봤지만,
영 달라질 것 같지 않더라구요.
지금은 5분거리의 어린이 집에 맡기면서도 맘이 이렇게 불안한데,
아무리 대학생이라도 당장 달려가 도와줄수도 없는 외국으로 간다고 하면,
난 우리 아들을 보내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벌써 심장이 두근 거려요.
물론 달라질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엄마아빠에게 자식을 키우는 믿음이라는 걸 정말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엄마아빠가 날 이렇게 용감하게 키우신 것도,
어쩌면 저를 향한 그 믿음 이었지 않나...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이 되돌아 보면 저에게 항상 자율성과 책임감을 주었고,
주체성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아빠가 날 이렇게 믿으시는데,
내가 잘 되어야지,
내가 잘 해야지,
내가 조심해야지,
나를 보호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이런 생각들이 저를 항상 절제하게 하고, 스스로 지키게 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을 해가 되어요.
그런데 내가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그 믿음이라는 것이 실천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일인지.. 새삼 깨달아요.
무관심이 아니라 믿음이요.
철저하게 사랑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자식에게 뿐 아니라 배우자에게도요.
믿음.
사랑이를 키우면서,
이 믿음을 실천하는 것은 배워나가는 것이 어쩌면 또 엄마로서 배워야 할 것, 꼭 이뤄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나하나 배울 것들이 생각날때 마다,
엄마아빠의 인생과 그 삶 자체가 보여준 모범 답안의 모습에 감탄하고, 존경하곤 합니다.
나도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무엇을 남기는 부모가, 어른이 될 것인가 오늘도 돌아봅니다.
사랑해요, 엄마아빠 오늘도요.
런던에서
막내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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