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나의 어린시절을 지켜주고 있는 사람이란.. 본문

살아계신 하나님, 엄마아빠께.

나의 어린시절을 지켜주고 있는 사람이란..

막내 딸 2014. 5. 10. 05:22

2014.05.09


사랑하는 엄마아빠, 


어제는 어버이 날이었는데, 같이 있지도 못하고, 하루를 바쁘게 살았어요.

요즘은 일도 많고, 더군다나 아들과 씨름을 하며 하루를 보내니,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지로 모르겠어요. 


오늘은 성운이가 많이 징징대서 어떻게 해야할지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었어요.

아침에도 산책, 오후에도 산책, 

계속 왔다갔다 하고, 징징 대면 먹이고, 업어주고, 놀아주고 달래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저녁쯤 되니 막 소리를 지르기 직전까지 가더라구요. 

집안일은 산더미 처럼 쌓여있고, 

다른 사람들 처럼 집안이 더러워도 그냥 나 몰라라 며칠, 아니 한나절이라도 놔 두면 안되는 집이니,

그때 그때 청소를 하고 치우는것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더라구요.

아들은 놀아달라고 징징 대는데, 

쌓여있는 청소거리들을 보고 있자니... 

요놈을 업고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있죠. 

엄마 아빠는 어떻게 나를 키웠지... 싶어서요. 

나를 업고 오빠둘은 정신을 한껏 빼어 놓았을 텐데.

어린이집을 어릴때 부터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고,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을 하면 보냈을 엄마와, 

힘든 회사의 하루를 보내고 집에와서 온통 난장판인 아이들을 대해야 했던 아빠는 어땠을까..


아들 하나로도 이렇게 가끔은 눈물을 쏙 뺄때가 있는데,

엄마아빠는 어떻게 그 시간 다 견디고 사셨을 까요. 


엄마아빠는 내가 외지에 나와 고생한다 하시지만, 

되려 저는 엄마아빠가 그 시절 한국에서 우리를 키우셨다는게 더 상상이 안되요. 

지금도 한국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우나 생각이 들때도 있거든요. 


그래도 이 바보엄마는 아들내미, 한번 웃는 미소에 하루 피로 다 날리고, 

이제 재우고 몇자 적어봐요. 

눈을 감고 팔을 허우적 거리다가 제가 얼굴을 가져다 대면, 

내 얼굴을 더듬더듬 하다가 실눈뜨고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새근새근 숨쉬면서 잠이 드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천사가 따로 없어요. 

한없는 사랑때문에 책임감도 샘솟구요. 

아들 태어나고 난 두배는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엄마아빠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겠죠. 

가끔 내가 아들얼굴에 볼을 비빌때면, 

문득 아빠가 나 어릴적에 내 얼굴에 볼을 비비던 느낌이 불쑥불쑥 기억이 나고, 

토실토실한 팔뚝이 너무 귀여워서 앙 물어 보다가, 문득 또 아빠가 내 팔을 물었던 느낌도 생각나구요. 

내가 우리 아들 부르면서 '노올자~~ ' 하면, 그 나의 목소리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듣기도 해서 놀라기도 해요. 


참, 이상하죠. 

이렇게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과거속에, 서로의 미래속에 살아가나봐요. 

오늘 산책을 하다가 문득, 

우리 아들은 이 시간을 기억못하겠지... 싶었는데, 

그 기억은 다 나의 인생의 노트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고 보니, 

나의 어린시절은 나의 노트가 아니라, 엄마아빠의 인생의 노트에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어요.


그 누구도 모르는 나의 어린시절. 

이건 엄마아빠만이 아는 기억일테죠. 


우리는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듯, 

자식의 어린시절을 내 인생의 황금기에 기록해 두고, 그것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금 제대로된 '성인'이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만일 우리가 우리의 어린시절을 다 기억하고, 

내 부모의 고생과 노력을 다 알았다면, 

'도전' '무모함' '용기' '열정' 같은 젊음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10-20대의 불꽃같은 청춘에 하고 싶은 것들은 내 맘대로 다 하고 나면, 

자식의 어린시절을 보며 나의 어린시절을 상기하게 되고, 그러면서, 

'겸손' '중용' '계획' '신중' '감사' 이런 단어들을 진정 배워가는 것 같아요. 

이론적으로가 아니라 실천으로 말예요. 


지금 난 그 시기를 겪고 있나봐요 .

제가 얼마나 엄마아빠의 사랑을 받고 살았는지, 

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줄 줄도 안다고 했는지 새삼 깨달아요. 

우리 아들에게 얼굴을 부비고 매일 온몸에 뽀뽀를 해대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이뻐 할 때마다,

내가 받은 사랑의 그 모습과 닮아서 항상 머리속에 기억이 겹쳐지거든요. 

내가 그렇게 사랑 받아서 이렇게 사랑 주는 사람이 된 것 같아 항상 감사해요. 


그래서 매번 아들을 볼때마다 엄마아빠가 생각나고, 

이렇게 사랑으로 철저히 엮인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하는 구나 알게되어요. 

그리고 내가 받은 것 보다 더 많은 사랑 주는 부모가 되어야 겠다 다짐도 해 보구요. 

물론 쉽지는 않지만요. 


사랑하는 엄마아빠. 

오늘도 긴 하루를 보내면서, 잠깐 그리움에 젖어봐요. 

엄아아빠의 하루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멀리있어 더 애틋한 거겠죠? ^^ 


사랑해요. 오늘도. 


런던에서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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