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아빠와 베트남. 본문

살아계신 하나님, 엄마아빠께.

아빠와 베트남.

막내 딸 2014. 7. 23. 08:21

사랑하는 아빠, 엄마.


한동안 몸도 맘도 바빠서 연락을 못드렸더니, 

아빠가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전화를 하셨네요. 


아빠가 전화를 하셨는데, 결국 엄마랑 한시간을 통화하다 이제사 끊고 머리속에 맴도는, 

느낌인지, 생각인지 모를 엉켜있는 뭔가를 풀어보려고 이렇게 편지를 써요. 


아빠가 베트남을 가신다고 하니, 

엄마가 함께 가셨으면 했어요. 

여행도 여행이지만, 아빠의 생사의 운명이 걸렸었던 그 현장에 가는 아빠의 발걸음이,

엄마의 동행으로 한결 가벼우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거예요. 


어릴때 언젠가, 

제가 교회친구들 앞에서 "우리 아빠도 베트만 참전 용사다"고 자랑처럼 이야기를 하니, 

작은 오빠가 나중에 저를 조용히 불러서는 "너 아빠가 베트남에 왜 가신줄 아느냐"고. 

"어렵고 힘든 살림에 가족들을 위해서 아빠 스스로를 희생에서 가신 거라고... 전쟁은 여행이 아닌거라고"

이야기해 주었었어요.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 가족을 어깨에 지고 살았어야 했을 아빠의 인생을

생각해 보지 못하던 어린 시절이라, '참전 용사'는 그냥 좋은 건 줄 알았나봐요. 

베트남을 가셨는데, 비행기가 아니라 배를 타고 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충격을 받은 나를 스스로 보면서, 아... 나는 절대 아빠의 인생을 다 이해할 수도 없겠거니와,

공감조차 할 수 없는 세대라는 것을 알았어요. 



오늘 아빠와 엄마랑 이야기를 하고 나니, 

문득 그 때 작은 오빠의 이야기도 생각나고, 어쩌면 그런 역할은 딸이 아니라 배우자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시대를 살고, 가장 사랑하고,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

기쁨을 함께하고, 새로운 것을 함께 보고 배우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이 부부가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나와는 다른 부부의 연을 엄마아빠는 이어가고 계시겠지만, 

아빠의 어쩌면 아프고 힘들었었을 과거를 직면하는 그 시간에 엄마가 함께 한다면,

베트남으로의 방문이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너무 과거의 이야기라 아빠도 마음 덤덤히 여행처럼 가시는 길이라는 걸 알지만, 

엄마의 동행이 참 값진 선물이 되지 않을까요. 



언젠가 할머니께서, 아빠가 월남전에 가셨을때 매주 아빠의 편지를 기다리고,

매일같이 기도하며 시간을 보내셨다는 말씀을 해주셨었어요.

아,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성운이가 요즘 아프간이나 리비아 전쟁터에 가 있다고 생각해보니, 

앞이 캄캄하고 숨이 턱턱 막혀오는 걸 상상만으로 느끼고 말아요. 

그 시절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아빠, 

그 곳에 다시 가시는 아빠의 마음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어떤 마음이든 이제는 슬픈 마음이나, 힘든 마음보다는 기쁘고 즐겁고, 보람찬 마음으로 다녀오시길 바래요. 

이제는 무용담처럼 많은 참전 용사들이 그때의 이야기를 즐겁게, 혹은 추억을 씹으며 이야기 하곤 하겠지만,

그 곳에서 목숨을 잃은 가족들에게는 차마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역사적 그늘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아빠의 무용담이 들리는 것과 같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아 가고 있어요. 

그래서 엄마가 꼭 동행이 되어, 어쩌면 무거워 질 수 있는 그 여행길에, 

무용담을 들어주는, 그런 친구로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 


아빠, 어쨌든 나는 아빠의 그 희생과 아픔을 댓가로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감사하고 죄송해요. 

시대가 낳은 결과라고 하지만, 아빠는 그 시간을 견디고 우리 세대에게 이렇게 희망차고 아름다운 시대를 선물했으니, 우린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우리 세대를 대신해서도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을, 아빠가 다시 베트남에 가신다고 하니, 이제사 이런 마음이 깨달아 지네요. 

언제가 되어야 나는 다 큰 어른이 될까요.... 


엄마 아빠의 마음에 모두 차는 자식들은 아니지만, 

아직도 엄마아빠의 걱정거리가 되어드리고 있는 자식 셋이지만,

그 존재 만으로도 엄마아빠에게 응원이 되는 자식들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께요.

그렇지만 자식이 채울 수 없는 그런 자리에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지요? ^^ 


우리 걱정보다 이제는 엄마아빠의 두분의 행복을 찾아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시길 바래요. 

오늘 우리는 사랑이랑 함께 교외로 놀러 다녀왔어요. 

오가는 길에 우리의 미래, 하고 싶은 일들, 사랑이의 미래 들을 이야기를 신랑과 나누면서,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이 길이 바쁘지만 얼마나 즐거운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서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느끼면서, 

잠들기전 엄마아빠 생각을 해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동반자로 함께 해 주세요. ^^ 


오늘도 사랑해요. 

런던에서 사랑이 에미, 막내 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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