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올해도 생일에 즈음하여, 본문

살아계신 하나님, 엄마아빠께.

올해도 생일에 즈음하여,

막내 딸 2015. 1. 30. 08:30

사랑하는 엄마아빠, 


지난 번 생일에 편지를 쓴게 어제만 같은데 벌써 일년이 지나버렸어요.

엊그제 선우의 생일이라고 문자를 보내시면서 며칠있으면 네 생일이라고 아빠가 이야기 하셨죠.

이젠 손주들 생일까지 기억하고 계시는 엄마아빠를 보면서, 

가족들의 한사람 한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엄마아빠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바쁘다고 생일이 뭐 별거인가 싶어 지나온 날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엄마아빠는 제게 전화를 하시고, 축하해 주셨었어요. 


엄마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호주에 있던 해 였어요. 아마 2004년 1월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제 생일은 1월이라 항상 추웠는데, 처음으로 더운 여름에 제 생일을 맞았어요.

저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만물복귀를 하고 있었고, 무거운 모금용 초컬릿을 가방에 메고,

땀을 흘리며 걷고 있었어요. 


전화벨이 울리고 엄마가 "딸~" 그러셨어요.

"오늘 생일이네, 우리 딸 생일 축하해!" 그러셨는데, 

저는 그 전화를 받고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에 그냥 주저 앉아 울고 말았어요.

길 한편 보도블럭에 앉아 엄마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만 훌쩍거리면서 

침을 꿀꺽 꿀꺽 삼키면서 괜찮은 척하며 엄마와 통화를 했던 기억이나요. 

"괜찮아, 호주가 너무 좋아." 그러면서 엄마한테 이야기를 했지만,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걸 막을 수가 없더라구요. 


가는 곳마다 문전 박대를 당하고, 

어린 동양 아이가 다 녹은 초컬릿을 들고 나타나 어려운 섬나라 사람을 돕겠다고 하니,

가여워서 물론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고,

나를 무시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 취급을 당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나의 자존감이 땅을 치고 있을 때 걸려온 엄마의 전화는 제게 구세주와 같았어요. 


나도 누군가에게는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운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는 순간이었거든요. 

지구 반대편에서도 나를 생각하고 사랑하고 걱정해주고 있는 사람이, 

나 때문에 잠못 이루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나는 그거 하나로도, 세상 누가 나를 무시하는 순간에도 나는 스스로 강하게 설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나에 대한 자존감과 자부심은 그렇게 한없이 주는 사랑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았던 생일이었어요. 그때가 만 23살되던 해였어요. 


선교는 저를 참 많이도 강하게 했지만, 

그 과정을 겪어 나오는 일은 돌아보면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질적으로 어려운 것보다, 정신적으로 나를 놓지 않고, 자존감과 자부심을 잃지 않고 

나를 성장시킨 다는게, 많이 어려웠어요. 

선교를 전후해서도 마찬가지 였지만, 그 모든 순간에 엄마아빠가 항상 제편에 계셨기 때문에

저는 그 순간들을 다 이기고 이렇게 자신감 충만한 딸로, 여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아빠엄마, 

내일모레면 또 생일이 돌아와요. 

이젠 만으로 서른 네살이예요. 예수님보다 일년을 더 살고 있으니, 일년일년을 더욱 값지게 살아야 겠다 다짐도 해보아요.

올해도 어김없이, 나를 이렇게 세상에 내어주고, 내적으로 외적으로 성장시켜주시고, 

행복한 삶을 살게헤 주시고,그 모든 시간 나를 키워주시고, 사랑해주시고, 보듬어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영생을 두고 엄마아빠에게 사랑으로 보답해도 모자라겠지요. 


내 사랑과 우리 성운이와 성운이 아빠의 사랑과 앞으로 태어날 모든 후손들의 사랑들까지 다 모아서 

엄마아빠를 사랑할께요. 


항상 건강하세요. 


런던에서 생일 이틀 전에 

막내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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