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딸의 역마살 편지
큰 아들의 의미 본문
사랑하는 엄마아빠,
오랫만에 앉아 편지를 써요.
오늘 런던은 하늘도 맑고 바람도 따뜻하고 완연한 초여름 날씨예요. 예전같으면 이런날엔 일찍부터 밖으로 나가 공원으로 강가로 산책도 하고 한껏 바깥 바람을 즐길텐데, 요즘은 일도 바쁘고 몸이 나른한 것이, 둘째가 생겨서 그럴까요, 예전같지 않게 집에만 있고 싶은 시간이 많아요.
요즘 내내 걱정이 많은 엄마아빠 곁에서 같이 공감하고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항상 이역만리 떨어진 외국에서 편지를 쓰는게 고작이네요.
얼마전에 아빠가 큰 오빠 이야기를 하시고 나서,
우리 성운이를 볼때마다 마음이 벅차오르고, 뭔가 첫째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봐요.
나와 함께,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처음 만든 첫 아이.
내가 부모되게 해주고,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그 책임을 영원히 준 그런 사람이잖아요.
첫 아이는 그렇게 부모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을 둘째가 생기니 더욱 실감하게 되어요.
그냥 우리 아들, 내 자식 이었던 성운이가 둘째가 생기가 되면서 나의 '첫 아이, 큰 아들'이 된다고 생각하니, 뭔가 혼자 일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성운이는 뭔가 아들이라기 보다는 나의 동지 같고,
내가 없으면 이 가족을 지켜야 할 것 같고,
태어나는 아가를 위해 좋은 모습을 보이는 형/오빠가 되어야 할 것 같고,
이 작은 아이를 보면서, 나는 벌써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거예요.
알게 모르게 성운이는 알고 있겠죠.
그리고 앞으로 나는 계속 그런 말들과 행동을 성운이에게 하게 되겠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늘은 왠지 엄마의 큰 오빠를 향한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멈추지가 않는거예요.
첫아이가 받게되는 사랑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나는 성운이에게 더 많은 걸 기대는 그런 엄마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더 걱정이 되고, 더 안타깝고, 더 미안한 마음이 첫째를 향한 마음인가봐요.
어제는 성운이가 자다가 일어나 꿈을 꿨는지 엉엉 울면서 물을 찾더라구요, 성운아빠가 성운이를 안고 달래고, 나는 얼른 물을 가져오고, 체온계로 열이 있나 재어보고, 엉엉 우는 성운이에게 뭔가 무서운 것이 있는 것 같아서 '엄마 여깄어.'를 수백번 이야기하면서 달래는데,
엄마아빠도 큰 아들을 키우면서 이랬겠지, 첫 아이라, 실수도 많고 어찌할바 몰라 마음졸이고 아파했겠지 문득 떠올라, 가슴 찡했어요. 평생 엄마가 '여기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없는 날이 오면 나는 아들을 지켜줄 수 없어 얼마나 또 가슴아플까요.
이렇게 옆에 있어도 도와 줄 수 없을 때가 많은데, 훗날 다 큰 아들이 힘들어 하고 스스로 인생을 감당해 나간다고 할 때, 힘든 순간들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힘이들고 가슴아플까요. 그런 생각하니, 엄마아빠의 마음을 왠지 조금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가 눈물 흘리신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자식을 키우면서 이런 순간들의 연속이겠죠.
순간 순간마다 엄마아빠의 모습과 내 모습이 겹쳐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겠죠.
그래서 부모가 된 것이 감사하고, 그래서 내가 인간이 되어 가는 것 같아 감사해요.
문득 큰 오빠에게 감사해요. 왜 한국문화에서 그렇게들 큰 아이의 존재를 부모와 같이 여기는지 알 것 같기도 해요. 오빠에게 다 주어야 하는 사랑 내가 많이 받아 간 것 같아 오빠에게 미안하고, 엄마아빠에게는 아직도 물가에 내어 놓은 아이같은 아들일지 모르지만, 제게는 듬직하고 아빠 같은 기둥이어서, 큰 오빠를 낳아주시고, 작은 오빠 낳아주시고, 나를 막내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항상 오빠들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산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갚으며 살아야 할지, 생각하며 살아야 겠어요.
엄마아빠, 평생 사랑할 수 있는 가족을 이렇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늘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날씨 좋은 런던에서 막내 딸 올림.
'살아계신 하나님, 엄마아빠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줄 수 있는 건 사랑뿐. (0) | 2015.02.17 |
---|---|
올해도 생일에 즈음하여, (0) | 2015.01.30 |
아빠와 베트남. (1) | 2014.07.23 |
믿음. (0) | 2014.06.20 |
나의 어린시절을 지켜주고 있는 사람이란.. (0) | 2014.05.10 |